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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아래, 머무는 것들
김지아나
김지아나 작가는 흙과 빛을 매개로, 전통과 현대, 자연과 기술 사이의 경계를 탐구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녀의 작업은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시작됩니다. 흙을 1300도 이상의 고온에서 구워낸 세라믹 조각을 마치 종잇장처럼 얇게 빚고, 다시 깨뜨립니다. 이렇게 생성된 파편들을 작가는 하나하나 손으로 붙이며 하나의 큰 화면을 구성하죠.

이 파편들은 단순한 부스러기가 아니라, 시간이 축적된 기억의 덩어리입니다. 완벽한 형태보다는 부서진 조각들이 전하는 감각에 주목하며, 그 틈과 흔적 속에서 작가는 시간을 느끼고, 감상자 역시 그 흐름을 체험하게 만듭니다.

이번 비엔날레에 출품된 작품에서는 특히 ‘흐름’과 ‘번짐’이라는 수묵의 핵심 개념이 도자 파편을 통해 구현됩니다. 벽과 바닥, 천장에까지 연결된 이 조각들은 마치 먹이 물에 번지듯 유기적으로 퍼지며, 수묵의 여백과 유동성을 입체적인 공간 언어로 바꾸어 놓습니다.

관람자는 이 파편의 물결 사이를 걷듯 공간을 지나며, 눈앞에서 흐르고, 멈추고, 다시 번지는 듯한 감각적 경험을 하게 됩니다.

김지아나의 작업은 흙이라는 물질을 통해 파편과 흔적, 균열과 흐름이라는 개념을 동시대의 조형 언어로 전환하며, 수묵의 정신성을 현대적으로 확장시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