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자리 인산인해 I
김은진
이 공간에서는 김은진 작가의 작품들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전통 재료인 자개와 흑판, 동양화 물감을 활용해 독창적인 ‘자개 산수’를 구축해온 작가는 빛과 그림자, 장식성과 상징성을 넘나드는 독특한 조형 세계를 펼쳐 보입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대형 병풍 형식의 작품 〈신의 자리_인산인해〉입니다. 수많은 인물과 동물, 우화적 장면들이 뒤엉켜하나의 몽환적인 군상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유쾌하게 보이지만, 그 속엔 불안, 고립, 혼란이 숨어 있습니다.
작가는 이 장면을 통해 신이 부재한 시대, 인간 군중의 심리와 신앙, 욕망을 날카롭게 조명합니다.
이어지는 〈선명한 찰나〉 시리즈는 제주도의 화산석과 대지에서 영감을 받은 작업입니다. 무채색의 화면 위로 흩뿌려진 자개의 입자들은, 오랜 시간 땅이 견뎌온 침묵과 압력의 흔적처럼 느껴집니다. 그 앞에 서면, 마치 자연이 품은 기억을 마주하는 듯한 감각이 전해집니다.
마지막으로 보이는 작품 〈내려오는 길〉은 산처럼 솟은 형상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형상의 출발점은, 바로 노년 여성의 희어진 두피입니다. 작가는 노화된 몸을 존엄한 풍경으로 변환시켜, 보이지 않던 노년기 여성의 존재와 감정을 자개의 빛을 통해 조용히, 강하게 드러냅니다.
김은진 작가의 작품은 단순한 장식화가 아니라, 빛과 어둠, 신화와 현실, 상처와 유머가 교차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공간을 천천히 걸으며, 화면 너머로 당신 자신의 마음 풍경을 마주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