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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들
도나옹
이 공간에 설치된 작품은 싱가포르 출신의 설치미술가 도나 옹(Donna Ong)의 〈Etymologies〉 시리즈입니다.

도나 옹은 기억과 상상, 현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를 탐색하는 작업을 이어오며, 건축, 순수미술, 픽션 라이팅의 요소를 넘나드는 설치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의 작업은 마치 무대 장면처럼 오브제를 배치하고, 하나의 서사 속으로 관람자를 끌어들이는 독특한 형식을 지닙니다.

〈Etymologies〉는 전통 동아시아 수묵화의 공간적 감각을 현대 설치와 영상 형식으로 전환한 작품입니다.

작가는 ‘어원학’이라는 제목 아래, 이미지의 기원과 진화, 문화적 맥락 속에서의 변화 가능성을 탐구합니다.

투명한 아크릴 박스 안에 겹겹이 중첩된 필름 이미지들은 멀리서 보면 수묵 산수화처럼 보이지만, 관람자의 시선과 움직임에 따라 유동적으로 풍경이 변화합니다.

이는 전통 수묵화의 삼원법—고원, 심원, 평원—을 현대적 시점으로 재구성한 시도로, 고정된 시각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흐름을 드러냅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미지 사이의 틈, 즉 필름과 필름 사이의 공기층이 수묵의 여백처럼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운생동’—살아 움직이는 기운—은 먹이 아닌 빛과 투명성을 통해 구현됩니다. 작품 속 ‘동굴’은 문명의 기원이자, 환상과 현실이 겹쳐지는 상징적 공간으로 작용하며, 싱가포르라는 다문화 도시국가의 복합적 정체성과도 연결됩니다.

《문명의 이웃들 – Somewhere over the Yellow Sea》라는 비엔날레의 주제 아래, 도나 옹의 작업은 아시아 내부의 문화적 층위와 기억의 깊이를 섬세하게 드러냅니다. 이 설치는 단지 바라보는 작업이 아니라, 직접 사유하고 구성해야 하는 하나의 풍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