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방
로비 코넬리센
이 공간에서는 네덜란드 작가 로비 코넬리센의 설치작품 〈검은 방〉을 소개합니다.
로비 코넬리센은 인간의 부재를 전제로 한 구조적 공간의 드로잉으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아온 작가입니다.
그의 작업은 도서관, 대기실, 공장처럼 익숙하지만 비어 있는 장소를 그리며, 그 비어 있음 자체가 관람자의 기억과 상상력을 투사하는 장이 됩니다.
〈검은 방〉은 이러한 개념이 더욱 확장된 작품으로,U자 형태의 구조물 안에서 세 개의 벽면에 걸쳐 총 60개의 드로잉 애니메이션이 이어집니다.
목탄 특유의 질감으로 구성된 선과 면, 명암과 번짐이 화면 위를 천천히 흐르며 추상과 구상, 2차원과 3차원의 경계가 느릿하게 움직이는 감각을 만들어냅니다.
작가는 생물학을 전공한 이력을 바탕으로, 공간을 하나의 정신적 유기체처럼 다룹니다.
이 작품 속 공간은 실제 장소라기보다, 관람자의 내면이 머무는 잠재적 공간, 즉 정신의 방으로 기능합니다.
〈검은 방〉은 또한 동양 수묵과 서양 드로잉의 접점을 탐구합니다. 목탄이라는 재료는 먹과 유사한 물성을 지니며, 여백과 반복, 감각의 속도를 통해 정신성의 공간을 열어줍니다.
이처럼 〈검은 방〉은 단순한 시청각 설치를 넘어, 관람자의 기억과 감정이 투영되는 감각의 심연이자, 이번 비엔날레 주제인 ‘문명의 이웃들’을 정신적 차원에서 사유하게 하는 실험 공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