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표류
미투 센
이 공간에서는 인도 출신 개념미술가 미투 센(Mithu Sen)의 설치작업 〈Dead Drift〉를 소개합니다.
‘Dead Drift’, 우리말로는 ‘죽은 표류’쯤으로 번역될 수 있는 이 작업은, 정지된 채 흘러가는 감정의 잔재와 침묵의 흔적을 시적으로 시각화한 몰입형 설치입니다.
작가의 작업 중심에는 〈I Bleed River 2124〉라는 짧은 영상이 있습니다. ‘나는 강처럼 피를 흘린다’는 이 시적인 제목 아래, 잔해, 기름, 파편, 푸른 빛의 강물이 교차하며 죽음 이후의 풍경, death-scape을 구성합니다.
이 영상은 바그다드, 마리우폴, 가자, 미얀마 등 21세기 전쟁과 재난의 기억이 새겨진 장소들을 배경으로 합니다. 작가는 이 지점들을 GPS 좌표로 치환하고, 의미 대신 침묵의 위치만을 우리 앞에 남깁니다.
바닥을 따라 이어지는 조명선은 영상과 드로잉, 텍스트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며, 빛과 이미지, 침묵 사이의 리듬을 만듭니다.
특히 벽면에 설치된 8점의 드로잉은 주목할 만합니다. 수묵의 터치 위에 채색과 금속잎, 수제 종이가 더해진 이 드로잉들은 눈을 감은 얼굴, 피 묻은 입가, 흐릿한 시선을 통해 익명성과 고통, 애도와 저항을 담아냅니다. 이 얼굴들은 언어가 닿지 못한 곳에 남겨진 침묵 이후의 응시입니다.
〈Dead Drift〉는 시작부터 소진된 기억, 불타는 기원을 품고 있으며 끝 이후의 삶을 상상하게 하는 열린 장치로 기능합니다.
이곳에서 ‘이웃됨’이란 연대나 동일성 이전에, 공동의 상처에 대한 감응으로 제안됩니다.
미투 센은 이 작업을 통해 전통 수묵의 정신성과 물질성을 오늘날의 윤리적, 정동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며, 동시대 예술의 감각적 경계를 넓혀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