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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호도_춘수
박그림
박그림은 전통 불화 장인에게 도제식으로 수학하며, 정교한 불교미술의 기법을 몸에 익힌 작가입니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단순히 전통의 재현에 그치지 않고, 퀴어 정체성과 지역성, 그리고 도제 경험이라는
복합적인 자아의 층위를 전통 도상과 접목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대표작 〈심호도〉는 불교 설화 ‘심우도’를 재해석한 연작입니다. 여기서 작가는 ‘소년과 소’의 서사를 ‘보살과 호랑이’로 치환해, 인간이 되지 못한 호랑이의 여정을 통해 차별과 자기혐오를 극복하고 자기 자신을 긍정해 나가는 치유의 과정을 그립니다. 호랑이는 단군신화 속 인물이자 작가 자신의 자의식이 투영된 존재로,
기존의 중심 서사를 비트는 감각적인 장치입니다.

〈Holy Grail〉 연작에서는 불교 수인과 붉은 액체, 샴페인 같은 이질적 이미지들이 교차하며 퀴어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비틀고, 〈흑화현〉 연작에서는 애니메이션 속 ‘흑화’된 인물과 불교 명왕이 결합되어 선과 악, 중심과 주변의 경계를 흔듭니다.

박그림의 작업은 정교한 전통 형식 속에 현대의 감각과 문제의식을 담아 《문명의 이웃들》이라는 이번 비엔날레 주제를 가장 예민하고 세밀한 방식으로 사유합니다.

그의 화면 앞에서, 우리는 질문을 던지는 존재가 아닌, 스스로 이야기를 쓰는 존재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