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훈 (阿吽)
사와무라 수미코
이 공간에서는 일본 작가 사와무라 수미코의 서예 설치 작업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사와무라는 서예를 단순한 문자 예술이 아닌, 신체와 시간, 공간이 교차하는 수행적 행위로 확장해온 작가입니다.
그녀에게 ‘쓰기’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리듬과 호흡을 담아내는 예술적 실천입니다. 이번 비엔날레에 출품된 7점의 대형 작업들은 모두 종이 위에 먹으로 직접 쓴 글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나하나가 절대적인 집중 속에서 수행된 행위의 흔적입니다.
작품의 제목은 실제로 쓰인 글자에서 유래하지만, 일본어와 영어 제목 사이에는 시적 해석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阿吽〉은 불교에서 우주의 시작과 끝, 들숨과 날숨을 뜻하는 말인데, 영어 제목은 〈A to Z〉로 번역되어 문자에 담긴 시간성과 순환성을 감각적으로 드러냅니다.
〈山川草木〉, 즉 ‘산천초목’ 시리즈는 자연의 전체성을 상징하는 글자이지만, 영문 제목은 〈Lines〉로 제시되어 문자보다 선과 리듬의 움직임에 주목하게 만듭니다.
사와무라는 독특한 도구를 사용합니다. 수건을 묶어 만든 붓, 먹이 담긴 플라스틱 병 등 도구의 감각과 몸의 움직임이 그대로 종이에 기록됩니다. 이러한 방식은 문자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존재를 써 내려가는 행위에 가깝습니다.
그녀의 작업은 문자의 외형을 넘어서, 여백, 침묵, 감각, 시간을 통해 수묵의 현재성을 다시 사유하게 만듭니다.
사와무라 수미코에게 ‘이웃됨’이란, 언어가 닿지 않는 곳에서의 감각적 소통이며, 몸의 움직임을 통해 이루어지는 무언의 공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