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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
샨 판
산 판은 중국 항저우에서 태어나 독일로 이주한 뒤, 동서양의 미학을 넘나들며 수묵을 개념적 매체로 확장해온 작가입니다. 그에게 수묵은 단지 전통 회화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시간과 기억, 존재의 흔적을 사유하는 철학적 언어입니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소개되는 작품 〈Entropy 墨水人生漂不白〉는 퍼포먼스 영상과 실크 가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목을 직역하면 “먹물 같은 인생은 아무리 표백해도 하얘지지 않는다”는 뜻. 여기에는 삶의 얼룩과 흔적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

작가는 흰 가운 위에 먹을 붓고, 다시 물을 쏟아 부으며 퍼포먼스를 펼칩니다. 이 퍼포먼스는 씻어내려 해도 사라지지 않는 기억과 시간의 얼룩을 형상화합니다. 영상과 함께 놓인 실제 가운은 몸은 사라졌지만 흔적은 남아 있는 존재의 잔재와 감각을 선명히 보여줍니다.

이 작업은 ‘정화’나 ‘삭제’가 아닌 흔적을 감당하고 끌어안는 방식으로 문명과 삶을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문명의 이웃들》이라는 이번 비엔날레 주제처럼, 산 판은 전통을 없애거나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흔적 위에 다시 질문을 세웁니다.

지금 이 작품 앞에서 여러분은 지워지지 않는 것들에 대해 무엇을 느끼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