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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탁본
이영취
이 공간에서는 대만 출신 작가 이영취의 작업 〈Industrial Rubbing〉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작가는 자신이 자란 산업 도시의 풍경과 기억, 그 안에 남겨진 소리, 쇳조각, 오래된 간판들에서 작업을 시작합니다.

어린 시절의 체험과 도시의 흔적들이, 오늘날의 자본주의와 정체성 문제로 이어지며 작품의 핵심이 됩니다.

작품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바로 ‘도판(盜版)’입니다.

일반적으로는 ‘불법 복제’를 뜻하지만, 이영취에게 도판은 복제를 넘어선 문화적 은유입니다.

한때 ‘해적왕국’으로 불렸던 대만의 복제 시대를 자조적으로 기억하면서, 그 안에 담긴 산업구조의 변화와 사회적 전환을 비판적으로 성찰합니다.

〈Industrial Rubbing〉 시리즈는 버려진 공장, 녹슨 기계, 산업 자재들을 탁본하거나, 그 재료를 수집해 재조합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그는 이 행위를 통해, 잊힌 노동의 기억과 산업화의 흔적을 오늘날의 도시와 사회에 다시 연결합니다.

이 작업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닙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긴장과 균열을 동시에 담아내며, 동아시아의 공통된 근대화의 궤적을 시각화합니다. 이번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의 주제인 《문명의 이웃들》과도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

황해를 사이에 둔 대만과 한국, 그 두 사회가 겪은 산업화와 정체성의 흔들림이 이 작품을 통해 다시 떠오릅니다.

폐기된 것들을 예술로 되살리는 이영취의 작업은, 우리가 무심히 지나친 도시의 조각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그리고 이 낡은 흔적들 속에서, 공통의 기억, 감각의 연대가 다시 피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