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밥
이진경
조용한 화면에 빽빽하게 적힌 손글씨들. 그 위로 식물과 달, 사라진 풍경과 이름들이 어른거립니다.
이진경 작가는 강원도 홍천에서 작업하며, 그림과 글을 통해 우리가 지나온 시간, 잊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되살립니다.
그녀의 작품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마치 한 장의 그림처럼 보이던 것이 하나하나의 손글씨로 이루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글씨는 누군가의 삶, 이름, 고통, 기억을 담고 있으며, 작가는 그 모든 것을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기록해 나갑니다.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전라남도 지역의 이야기들이 주요 주제가 됩니다.
남도의 풍요로운 음식, 민요와 호남가, 암태도 소작쟁이 사건, 그리고 목포 출신 시인 김지하의 시까지— 한 지역이 품고 있는 역사와 감정을 그녀는 섬세한 글씨와 이미지로 엮어냅니다.
특히 억압 속에서도 자기 목소리를 냈던 이들의 이름을 나열하는 작업은 단순한 열거가 아닌, 역사와의 대면이자 기억의 공간을 만드는 일입니다.
관람객은 작품 속 이름들을 천천히 읽으며, 자연스럽게 생각에 잠기고, ‘기억하는 일’이 왜 여전히 중요한지를 되묻게 됩니다.
이진경 작가의 작업은 단지 보는 그림이 아닙니다. 읽고, 공감하고, 마음으로 듣는 작업입니다.
손으로 꾹꾹 눌러 쓴 글씨는 시간의 무게를 품고 있고, 그 속에서 우리는 ‘문명’이란 거대한 단어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에서 출발해야 함을 알게 됩니다.
《문명의 이웃들》이라는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처럼, 그녀의 작업은 말합니다— 우리가 나누는 것은 그림이 아니라, 기억이라고.
지금, 이 작품 앞에 선 당신 역시 잊힌 이름을 다시 부르고, 그들의 시간과 감정을 함께 느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