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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와 뽕나무, 철 조각들의 놀이
타티아나 볼스카
볼스카는 공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드로잉과 설치를 통해, 감각과 물질, 예술과 삶의 관계를 탐구해온 작가인데요.

그녀의 선은 벽과 바닥, 천장, 그리고 구조의 틈을 따라 마치 생명체처럼 번져나갑니다. 드로잉이 단순한 생각의 산물이 아니라, 반복과 중첩 속에서 자라나는 생물학적 성장처럼 보이는 것이죠.

이번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에서는 조금 특별한 전환이 있었습니다.
원래는 벽면 전체에 대형 드로잉을 펼칠 계획이었지만, 계획이 변경되어 한국 전통 종이인 한지를 사용하는 작업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 것입니다.

볼스카는 광주에서 직접 한지를 구입해 작업했는데요. 작가가 처음 접한 한지라는 종이는 먹을 흡수하면서 예기치 못한 질감을 드러냈으며, 이는 작가에게 큰 흥미로 다가왔습니다. 또한 찢고 이어 붙이는 과정을 통해 한지가 지닌 강인함과 동시에 취약함을 경험했습니다.
그렇게 수천 개의 파편들이 스테이플러로 꿰매지듯 연결되며, 하나의 거대한 화면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볼스카는 이 과정을 단순한 ‘대체’가 아니라, 실패와 재구성을 창작의 방법론으로 전환하는 실험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한지와 먹, 그리고 스테이플이라는 단순한 재료가 가죽, 직물, 깃털, 풍경 등으로 끊임없이 변주되며 작가의 의도를 넘어선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녀의 작품은 “무엇을 그릴 것인가”라는 질문보다, “어떻게 감각하고 관계 맺을 것인가”라는 물음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는 〈문명의 이웃들 – Somewhere Over the Yellow Sea〉입니다.
볼스카의 작업은 문명의 경계 바깥, 아직 ‘되기 전’의 감각을 탐구하며, 잊힌 감각이나 분해된 형상, 인식되지 않았던 파편들을 예술의 표면 위로 드러냅니다.
수많은 조각들이 하나로 모이는 순간, 우리는 파괴와 봉합, 실패와 축제가 동시에 공존하는 동시대적 ‘이웃됨’의 풍경을 마주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