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삼연작
펑밍칩
이 공간에는 홍콩 출신 작가 펑밍칩의 대표작, 〈Departure, Triptych〉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작가는 동서양의 문자 체계와 조형 언어를 교차시키며, 전통 서예를 해체하고 재구성해온 실험적 서예가입니다.
1977년 미국으로 이주한 이후, ‘시간서체’, ‘감정서체’, ‘모래서체’ 등 100여 종이 넘는 독창적인 서체를 개발하며 문자의 형태, 감각, 시간성을 탐구해왔습니다.
〈Departure〉는 세 개의 패널로 구성된 대형 작업으로, 서예가 언어에서 조형으로, 그리고 다시 감각으로 이행하는 흐름을 시각화합니다.
첫 번째 패널은 격자 안에 조밀하게 배열된 한자들로 구성되어 읽기보다는 ‘보는’ 문자의 감각을 강조합니다. 반복과 리듬 속에서 문자는 점차 해체되며, 두 번째 패널에서는 획들이 암석 조각처럼 떠다니는 추상적 풍경으로 바뀝니다. 여기서 붓의 물성과 작가의 몸짓이 더욱 선명히 드러나죠.
마지막 패널에 이르면, 문자의 형태는 거의 사라지고 점들의 흐름만이 남습니다. 이 점들은 붓이 종이에 머문 ‘시간의 흔적’이며, 서예가 단순한 글쓰기를 넘어 감각적 시간의 기록임을 보여줍니다.
〈Departure〉라는 제목은 문자에서 떠나는 여정, 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언어를 찾는 작가의 미학적 이주를 암시합니다.
펑밍칩은 이 작품을 통해 전통 서예의 감각을 현대적 조형 언어로 확장하며, 언어와 정체성, 이주와 경계, 그리고 해독 불가능한 감각의 언어를 탐구합니다.
‘읽을 수 없는 글자’는 이곳에서 오히려 가장 깊은 감각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