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와 모란
박생광 –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예술
여러분이 보고 계신 이 강렬한 색채의 작품들은 박생광(1904-1985)의 대표작들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박생광의 이런 한국적인 그림들은 모두 그가 죽기 8년 전부터 그리기 시작한 작품들이라는 것입니다.
박생광은 1904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17세에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그곳에서 30년 가까이 일본화를 배우고 그렸어요. 1945년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당시 화단은 일본화를 배척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오랫동안 은둔하며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1970년대 후반, 70세가 넘은 나이에 박생광은 놀라운 변신을 시작합니다. 그가 스스로 '내고(乃故)'라고 부른 길—본래 있었던 자리로 되돌아가는 길을 걷기 시작한 것입니다. 「호랑이와 모란」 6폭 병풍을 보세요. 화면을 가득 채운 원색들이 폭발하듯 쏟아져 나옵니다. 빨강, 파랑, 노랑, 초록—이것은 우리나라 전통 오방색입니다. 일본에서 배운 섬세한 기법 위에 한국의 토속적 생명력을 입힌 거죠.
「십이지신-소」와 「탈」 작품들도 보세요. 이것들은 단순한 전통 재현이 아닙니다. 박생광은 무속, 불교, 민화의 소재를 가져와서 완전히 새로운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했습니다. 마치 무당이 굿을 하듯, 화면 위에서 형상들이 살아 움직입니다. 흑백으로 그린 「용」 작품은 또 다른 면을 보여줍니다. 강렬한 색채 없이도 용의 신성함과 역동성을 완벽하게 표현했어요. 여백과 검은 선의 대비만으로 한국적 초월성을 구현한 걸작입니다.
박생광의 독창성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는 전통을 단순히 '그린' 게 아니라 '다시 살게' 만들었습니다. 옛것을 박물관에서 꺼내 온 게 아니라, 지금 여기서 숨 쉬는 살아있는 것으로 되살려낸 거예요.
그의 작업 방식을 보면 '안에서 바깥으로'의 철학이 드러납니다. 서양 것을 받아들이거나 일본 것을 모방하는 대신, 한국 내부의 무의식과 영성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1977년 국내 첫 개인전에서 그는 완전히 새로운 박생광을 보여줬습니다. 샤머니즘, 불교 설화, 민화, 역사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화단에 충격을 주었어요. '한국적 회화를 현대적 조형성으로 완벽하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무속5」와 「무용도」에서는 무속의 세계를 현대적으로 해석했습니다. 인물들이 단순한 그림을 넘어 마치 실제 제의 현장처럼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있어요.
박생광이 추구한 '내고'의 정신은 단순한 복고가 아닙니다. 전통을 오늘의 감각으로 새롭게 체험하게 만드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면 낡은 느낌이 아니라 강렬하고 현대적인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말년 8년 동안 박생광은 한국 미술사에 완전히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습니다. 수묵채색화라는 독창적 기법으로 한국의 정신과 미감을 현대적으로 구현한 거죠. 그의 작품 앞에 서면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됩니다. "나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그리고 "지금 나는 어떤 색으로 나를 그려가고 있는가?" 박생광이 보여준 '내고'의 길은 여전히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