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의 놀림
남천 송수남 – 붓의 놀림, 수묵의 진화
여러분 앞에 펼쳐진 이 작품은 한국 현대 수묵화의 선구자, 남천 송수남(1938-2013)의 대표작인 「붓의 놀림」입니다. 마치 붓이 춤을 추는 듯한 선의 리듬과 먹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나요?
송수남은 1938년 전주에서 태어나 서예를 즐기던 조부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서양화와 동양화를 모두 공부한 그는 1960년대부터 수묵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붓의 놀림」이라는 제목이 모든 걸 말해줍니다. 이 작품은 무엇을 그렸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그렸느냐에 집중합니다. 붓질 자체, 즉 그리는 행위와 몸의 리듬, 그 순간의 감각을 예술로 만드는 것
화면을 자세히 보세요. 먹의 진하고 옅은 차이, 번지는 효과, 흘러가는 선의 움직임이 보이시죠?
그 속에서는 단순한 기법이 아니라 자연을 마주한 작가의 감정과 그 순간의 호흡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송수남은 1980년대 '수묵화 운동'을 이끈 중심 인물입니다. 이 운동은 전통 수묵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되살리려는 시도였습니다. 그에게 수묵은 옛것을 보존하는 수단이 아니라 현재를 표현하는 살아있는 언어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먹은 검지만, 그 속에는 천 가지 색이 있다." 정말 그렇지 않나요? 검은 먹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풍부한 감정과 공간감을 표현할 수 있다니 실로 놀랍습니다.
송수남의 특별함은 전통을 해체하지 않으면서도 현대적으로 변화시켰다는 점입니다. 같은 시기 다른 수묵 작가들이 추상화나 해체에 집중했다면, 그는 수묵의 본래 문법을 지키면서도 그 안에서 새로운 표현을 찾아냈습니다.
초기에는 산수화의 형태를 해체하는 작업을 했지만, 점차 꽃과 나무, 바람과 구름 같은 자연 요소들을 추상적 리듬으로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붓의 놀림」은 그런 변화의 정점에서 탄생한 연작입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백입니다. 비어있는 공간이 그어진 선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 여백 때문에 먹선들이 더욱 생동감 있게 보보여지고, 전체적인 균형과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송수남은 이론보다는 직접적인 감각을 중시했습니다. 머리로 계산해서 그리는 게 아니라 눈과 손의 감각, 화면 위에서 일어나는 즉흥적 움직임에 집중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살아있는 에너지가 가득합니다. 그가 추진한 수묵화 운동의 목표는 수묵을 일상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었습니다.
박물관이나 고궁에만 있는 고리타분한 전통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우리와 함께 호흡하는 현대 예술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죠.
이번 비엔날레 주제인 '문명의 이웃들'과도 잘 어울립니다. 송수남의 수묵은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추상과 구상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송수남이 남긴 이 붓의 놀림은 지금도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전해줍니다.
조용하지만 멈춰있지 않은, 전통이지만 현대적인 그 특별한 감각을 함께 느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