楊少白의 칠언대련
검여 유희강 – 한계를 넘어선 붓, 경계를 지운 예술
검여 유희강은 한국 현대 서예사에서 가장 독창적인 길을 걸어간 예술가입니다. 그는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서예의 지평을 확장시켰습니다.
검여라는 호는 '칼처럼 날카롭다'는 뜻입니다. 그는 자신의 글씨를 "칼처럼 날카롭고, 돌처럼 단단하며, 박처럼 둥근 글씨"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는 그의 예술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말입니다.
그에게는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1968년 오른팔 마비라는 신체적 한계에 직면했지만, 이를 포기의 이유로 삼지 않았습니다. 대신 왼손 서예, 즉 '좌수서'를 개척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극복이 아닌 새로운 창조였습니다.
전시된 작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무량청정」은 두 개의 큰 글자를 화면에 꽉 차게 쓴 작품입니다. '무량'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음'을, '청정'은 '맑고 깨끗함'을 의미합니다. 불교적 개념이지만, 검여는 이를 순수한 조형 언어로 변환시켰습니다.
각 글자의 구조를 보면, 전통적 균형을 의도적으로 깨뜨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불균형이 오히려 역동적 에너지를 만들어냅니다. 절제된 획 속에서도 강한 기운이 분출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색 시 홍시자가」는 고려 말 문신 이색의 시를 대련 형식으로 쓴 작품입니다. 전통 고시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사례입니다. 거침없는 행서체로 과거와 현재를 자연스럽게 연결시켰습니다.
「두보 시 백부행」에서는 당나라 시성 두보의 시를 격조 높은 행서체로 표현했습니다. 구성은 자유롭고 분방하지만 고전적 품격을 잃지 않습니다. 이는 검여가 추구한 '시서일체'의 미학을 보여줍니다.
「양소백의 철언대련」은 균형과 대칭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각 글자마다 구조와 필세가 다릅니다. 같은 듯 다른 변화가 음악의 '반복과 변주'처럼 리듬감을 만들어냅니다.
「도연명 독산해경」은 고졸한 필치로 도연명의 시를 담았습니다. 거친 듯 자유로운 획에서 검여 특유의 율동감이 드러납니다. 자연과 인간, 사유와 시를 하나로 엮는 동아시아적 미학이 구현되어 있습니다.
검여의 왼손 서예는 오른손과 다른 특징을 보입니다. 더 자유롭고 파격적이며, 때로는 의외의 아름다움을 창출합니다. 신체적 제약이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것입니다.
그의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전통의 해체와 재구성입니다. 기존 서예의 법칙을 무너뜨리되, 그 정신적 토대는 유지합니다. 형식은 파괴하지만 본질은 계승하는 방식입니다.
검여는 서예를 단순한 문자 예술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서예는 정신과 형상이 만나는 융합 공간이었습니다. 문자가 갖는 의미와 시각적 조형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예술이었습니다.
그의 글씨에는 강한 개성이 담겨 있습니다. 전통적 아름다움과는 다른, 거칠고 역동적인 미감입니다. 이는 현대인의 감성과 더 가까운 새로운 서예 언어였습니다.
검여 유희강의 서예는 한계를 가능성으로 바꾼 예술입니다. 신체적 제약, 전통의 틀, 동서양의 경계—이 모든 것을 넘어서며 독자적 영역을 구축했습니다. 그의 붓끝에서 우리는 진정한 창조의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