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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대한 고찰
로랑그라소 – 과거에 대한 고찰
지금 여러분이 마주한 이 작품은 프랑스 작가 로랑 그라소의 〈과거에 대한 고찰〉입니다. 높이 2미터, 너비 4미터에 달하는 이 3부작 회화는, 단지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시각적으로 풀어낸 작업입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조선 후기의 대표적 화가, 윤두서와 겸재 정선의 회화를 오마주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작업은 그들의 실제 작품과 나란히, 두 전시관에 나뉘어 전시되고 있어, 시대와 시공간을 넘는 회화 간의 대화를 가능케 합니다.

왼쪽 패널에는 말을 탄 인물이 등장합니다. 윤두서의 자화상을 연상케 하는 이 장면은, 관조적이며 고요한 시선을 띤 인물이 백마를 타고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는 순간을 포착합니다. 단순한 재현을 넘어, ‘나’라는 존재가 시간 속을 어떻게 사유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인물은 전통 동양화의 여백과 서양 회화의 사실성이 혼합된 풍경 속에 놓여 있으며, 이는 과거의 정신과 오늘의 감각이 교차하는 지점입니다.

중앙의 패널은 한 줄기 태양, 혹은 태양을 둘러싼 다중의 광륜이 펼쳐지는 장면입니다. 대기광학 현상인 환일에서 영감을 받은 이 이미지는 현실과 초현실, 자연과 상징의 경계를 흐립니다. 이 ‘빛’은 단순히 물리적 현상을 넘어서,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예감이 동시에 투영된 시간의 상징으로 읽힙니다.

오른쪽 패널에 이르면, 산수의 형상이 펼쳐집니다. 이 장면은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 전통을 바탕으로 하되, 한층 더 추상적이고 초현실적인 풍경으로 치환되어 있습니다. 산은 날카롭고 수정처럼 빛나며, 현실의 지형이라기보다는, 기억과 이미지가 층층이 쌓여 만들어낸 심상의 지형처럼 다가옵니다.

〈과거에 대한 고찰〉은 회화의 언어를 빌려 과거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되묻습니다. 그라소는 윤두서의 응시, 정선의 자연 감각을 인용하면서도, 그것을 오늘의 시공간에 배치하고 전유하며, 관객이 다시 '과거'를 사유하도록 이끕니다.

작품이 전시된 이곳, 해남은 단지 물리적 장소를 넘어, 윤두서가 실제로 살았던 땅이며, 겸재가 그려낸 남도의 산천이 펼쳐지는 곳입니다. 그런 장소에서 이 작업은 단순한 이미지의 병치가 아닌, 전통과 현대, 기억과 상상, 회화와 철학이 교차하는 사유의 장이 됩니다.

관객 여러분께 묻습니다.
이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 앞에서,
여러분이 고찰하게 되는 ‘과거’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