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시간을 쓰다
간하오위 – 머리카락으로 만든 먹, 몸으로 그린 시간
여러분이 보고 계신 이 세 작품은 중국 출신 작가 간하오위가 2016년부터 2017년 사이에 제작한 연작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익숙한 질문인 '수묵이란 무엇인가'를 '몸으로 수묵을 그릴 수 있는가'로 바꿔서 묻습니다.
간하오위는 신체, 그중에서도 '머리카락'을 매개로 수묵의 본질을 다시 탐구하는 작가예요. 머리카락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체온, 냄새, 시간,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존재의 파편입니다.
첫 번째 영상 작품 「Hair Ink」를 보세요. 작가가 실제로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먹을 만드는 과정을 기록한 작품입니다. 머리카락을 태우고, 빻고, 물과 섞어 먹을 만드는 거예요. 그 과정은 고요하지만 강렬해요. 하나의 생명이 조용히 '그림'이 되어가는 순간입니다. 이 먹은 단지 재료가 아니라 그의 몸이고 시간이며, 예술의 시작점이에요. 영상 속 불, 그을음, 회전하는 연기의 이미지들은 수묵의 번짐처럼 무형의 감각과 에너지를 시각화합니다.
두 번째 설치작품 「Spend Your Hour」는 정말 독특한 기계장치입니다. '髟'—머리카락 부수—가 들어간 60개의 한자가 매분마다 바뀌고, 중국의 각 왕조 이름이 30분마다 바뀝니다. 머리카락, 문자, 역사, 권력, 정체성이 하나의 장치 안에서 순환하는 거죠. 머리카락이라는 사적인 재료와 왕조라는 공적인 체계를 기계적 순환 구조로 연결해서 권력과 기억, 정체성의 흐름을 보여줍니다. 단순한 타이머가 아니라 역사의 구조가 개인의 몸을 통해 작동하는 방식을 은유하는 장치예요.
마지막 작품 「As if there is Light」는 가장 철학적입니다. 실제 빛 없이 만들어진 그림자를 그린 작품이에요. 작가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먹으로 그림자의 형상을 재현했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빛, 그러나 그 흔적처럼 남겨진 이미지 속에서 존재와 부재, 실재와 허상의 경계를 사유하게 만들어요. 관람객은 '그림자'라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빛도 그림자도 없는 화면 앞에 서게 됩니다.
이는 단지 회화가 아니라 철학적 질문이에요. "내가 남긴 자취는 과연 나를 설명할 수 있는가?" 존재가 부재를 재현하고,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을 뒤쫓는 상황을 만들어냅니다.
간하오위의 수묵은 전통적 재현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그는 수묵의 철학인 번짐, 여백, 흐름을 몸과 연결시켜요. 먹은 더 이상 나무에서 온 것이 아니라 그의 삶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간하오위의 작업은 전통 수묵화의 형식을 그대로 따르지 않지만, 여백, 흐름, 번짐, 비물질성이라는 철학을 신체성과 개념성을 통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합니다. 작가는 이번 비엔날레 주제인 '문명의 이웃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수묵이라는 전통 회화의 언어를 몸으로 되새기고 시간을 그리는 또 하나의 방식으로 제시해요.
그의 수묵은 기억이며, 존재이며, 시간 그 자체입니다. 여러분 앞에 놓인 이 작업은 단지 하나의 설치가 아니라 '살아 있는 수묵'이고, 몸이 기억하는 이야기입니다.
묵은 흐르되, 그 안에는 사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