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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조그라마 프래그먼트 #1
로베르토 우아르카야 – 카메라 없이 만든 사진
여러분이 보고 계신 이 거대한 흑백 이미지들을 자세히 보세요. 사진 같지만 사진기로 찍은 게 아닙니다. 페루의 사진작가 로베르토 우아르카야는 렌즈도 셔터도 없이 이 놀라운 이미지들을 만들어냈어요.

우아르카야는 '찍는 사진'이 아니라 '생겨나는 이미지'를 탐구하는 작가입니다. 그가 사용하는 기법은 '포토그램'이라고 불러요. 이는 빛과 물질만으로 이미지를 만드는 아주 오래된 사진 기법입니다.

작업 과정을 상상해보세요. 작가는 거대한 감광지를 수십 미터 길이로 펼친 뒤, 직접 아마존 정글이나 안데스 산맥으로 가져갑니다. 그리고 나뭇잎, 꽃, 흙, 바닷물, 심지어 작은 동물들을 감광지 위에 올려놓고 플래시를 터뜨려요. 그러면 물질들이 빛을 차단한 부분은 하얗게, 빛이 닿은 부분은 검게 나타나면서 실루엣 같은 형상이 만들어집니다. 마치 시간 그 자체가 종이에 스며드는 것 같죠.

지금 보시는 작품은 총 길이 5미터에 달하는 대형 설치로, 아마존 우림의 식생을 담은 「아마조그라마」와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를 담은 「오세아노그라마」 시리즈입니다.

작품을 따라 천천히 이동해보세요. 마치 어둠 속 숲이나 바닷속을 유영하듯 빛과 그림자의 흐름 속에 몰입하게 될 거예요. 이것은 단순한 사진이 아니라 시간과 물질, 환경의 기록이자 생태적 이야기입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그가 플라스틱 쓰레기까지도 예술 재료로 사용한다는 거예요. 폐기물을 아름다운 이미지로 변환하면서도 환경 문제를 은밀하게 드러내는 거죠.

우아르카야는 남미 아마존 정글에서 문명이 닿지 않은 자연의 얼굴을 담아냅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다큐멘터리나 풍경 사진과는 완전히 달라요. 눈으로 본 풍경이 아니라 몸으로 느낀 어둠과 빛, 생명과 죽음의 경계를 표현하는 거예요.

그는 말합니다. "자연은 그 자체로 인화지이고, 사진은 그 흔적일 뿐이다.“

작가의 작업은 동양의 수묵화와도 비슷한 감각을 줍니다. 빛이 감광지에 스며들며 만들어내는 그라데이션이 마치 먹이 화선지를 번져가는 것 같거든요. 형태가 정확히 재현되기보다는 흔적과 기운, 여백과 스밈으로 풍경을 구성해요.

우아르카야의 작업은 현대 사진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디지털 시대에도 그는 가장 원시적인 방식—빛과 종이, 어둠 속의 기다림—을 통해 오히려 가장 깊은 현대적 감성을 불러일으켜요. 지금 여러분 앞에 펼쳐진 이 이미지는 말없이 말합니다. "우리가 잊고 있던 자연의 얼굴, 그것이 바로 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