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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미 60
박웅규 - 혐오와 성스러움의 경계에서
여러분이 보고 계신 이 작품들은 박웅규 작가의 〈Dummy〉 시리즈입니다. 처음 보면 멈칫하게 될 거예요. 벌레, 내장, 알 수 없는 덩어리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지만, 동시에 익숙한 종교적 형태도 보이시죠?

멀리서 보면 전통 불화의 숭엄한 형상 같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우리가 본능적으로 외면하고 싶은 이미지들이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어요. 놀랍게도 이 모든 것이 하나의 화면 안에서 공존하며 서로를 반사합니다.

〈Dummy〉라는 제목은 '껍데기', '모조품'이라는 뜻입니다. 작가는 이를 통해 성스러워 보이지만 실은 불안하고 이질적인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져요.

전체 시리즈는 불교의 '백팔번뇌'에서 착안한 108점의 회화로 구성되어 있고, 이번 전시에서는 그 중 일부를 만날 수 있습니다. 각 작품은 전통 불화의 구도를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벌레, 내장, 촉수 같은 본능적으로 불쾌한 형상들이에요.

하지만 작가는 이를 무질서하게 나열하지 않습니다. 매우 정교하고 질서 있는 조형 체계 속에 배치해서 관람자에게 혐오와 숭고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을 전달해요.

박웅규는 종교적 상징에서 출발하되, 세속적이고 천박하거나 혐오스럽다고 여겨지는 사물 위에 다시 의미를 쌓아올리는 방식으로 작업합니다. 벌레, 내장, 녹아내린 형상들은 그 자체로 불쾌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마주하기 꺼리는 심리적 경계와 맞닿아 있는 것들이에요.

그의 작업은 전복적이지만 결코 파괴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용한 방식으로 기존의 도상들을 해체하고, 그 안에 감춰진 감정, 관념, 신념을 다시 정돈해요.

불교의 숫자 상징처럼 정형화된 사유 틀을 차용해서 비정형적이고 혐오스러운 이미지를 새로운 시각 질서 안에 배열합니다. 그 안에서 벌레는 더 이상 벌레가 아니며, 내장은 단지 육체의 일부가 아니에요. 이들은 인간의 감정과 사유가 투영된 존재로 다시 태어납니다.

박웅규는 문명이 배제해온 '주변부의 존재들'—벌레 같은 이미지들—을 신성한 형상으로 전환시킴으로써 감각의 위계와 문명의 가치 체계 자체를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다시 관람자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더럽다고 느끼는가?", "그 감정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것은 정말 당신의 감각인가?"

보기 어려운 것을 보게 만들고, 피하고 싶은 것을 바라보게 하는 힘이 그의 작업의 본질입니다. 관객은 익숙한 듯 낯선 이 형상들 앞에서 무엇이 고귀하고 무엇이 경멸받아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예술을 통해 마주해야 할 내면의 거울이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