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dio guide LIST
Language
Another Landscape-신 정왜기공도병
장재록 – 먹빛에 잠긴 풍경, 욕망과 허무의 경계에서
여러분이 보고 계신 이 작품들은 장재록 작가의 대표 시리즈인 「Another Landscape」와 「Another Place – Cosmos」입니다. 한 폭의 수묵화 같기도 하고 흑백사진 같기도 하죠?

가운데 여섯 폭짜리 대작은 「Another Landscape – 신 정왜기공도병」(2017)이고, 양옆의 은하처럼 소용돌이치는 화면은 신작 「Another Place – Cosmos」(2025)입니다.

장재록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전통만이 아닙니다. 그의 작품 속에는 고급 자동차, 샹들리에, 다이아몬드 반지 같은 자본주의의 상징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원래의 화려한 색을 모두 잃은 채 먹빛으로 표현되어 있어요. 검고 하얀 이 이미지들은 오히려 그 화려함 속에 감춰진 허무와 아이러니를 더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우리 시대의 욕망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장재록은 그 질문을 먹으로 씁니다.

가운데 작품을 자세히 보세요. 임진왜란 당시 마지막 전투를 그린 전통 병풍화를 모티브로 삼아 픽셀 단위로 분절된 먹색 이미지로 재구성한 작품이에요. 역사적 서사가 담긴 장면이지만 마치 흑백 디지털 파일처럼 느껴지죠.

장재록은 수묵의 전통 기법인 먹의 번짐, 여백, 농담의 변화를 기반으로 디지털 이미지와 현대적 시각 문법을 결합하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특히 '픽셀화된 수묵'이라는 독창적인 방식으로 회화와 사진, 디지털 이미지의 경계를 넘나드는 화면을 구성해요. 전통과 기술, 기억과 이미지의 경계를 비틀며 동시대 문명 속에서 '과거를 재현하는 방식' 자체를 성찰하게 만듭니다.

양옆의 「Cosmos」 연작은 또 다른 차원을 보여줍니다. 은하처럼 펼쳐진 우주의 이미지를 전통 재료인 한지, 먹, 아크릴을 통해 구현한 작업이에요. 멀리서 보면 천체 망원경으로 본 성운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수묵의 미세한 흔적과 작가의 손길이 만들어낸 정밀한 리듬이 보입니다.

이는 자본과 욕망, 전쟁과 서사가 담긴 풍경 이후에 도달한 또 다른 차원의 '장소'와 존재론적 물음을 암시해요. 〈Another Landscape〉 시리즈는 전통 산수화의 형식과 픽셀화된 디지털 이미지를 결합한 그의 대표 연작입니다. 그 안에는 산과 강이 있고, 동시에 다이아몬드가 반짝이며 도시의 풍경이 스며들어요.

전통의 '여백'은 현대의 '속도'와 충돌하고, 수묵의 '사유'는 이미지의 '욕망'과 대립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충돌만 하지는 않아요. 그 중간 지점, 먹빛의 미묘한 번짐 속에서 새로운 대화가 시작됩니다.

장재록은 동양화가 단순히 자연을 재현하는 장르가 아니라 도덕성과 정신성을 내포한 사유의 공간이라 말합니다. 그에게 수묵은 단지 형식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는 철학이며, 자본과 시각의 시대에 사유를 건네는 매체입니다. 픽셀처럼 분절된 현대 사회 속에서 오히려 오래된 재료로 오늘의 삶을 묻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