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신중도-스타벅스
지민석 – 현대의 무당이 그린 브랜드 신들
여러분이 보고 계신 이 화려한 깃발들은 지민석 작가의 대표작 「백팔신중도」입니다. 한국과 멕시코를 오가며 활동하는 지민석은 스스로를 '현대의 무당'이라 정의하며 독특한 작업을 해왔어요.
지민석은 한국화의 전통에서 출발해 회화, 설치, 퍼포먼스, 비디오 등 다양한 매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무속 신앙과 불교 회화의 형식을 오늘날의 시각 언어로 재해석합니다.
깃발마다 등장하는 인물과 상징들을 자세히 보세요. 모두 특정 브랜드에서 유래한 이미지들이에요. 코카콜라, 스타벅스, 구찌 등 현대 소비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기업들이 '신'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작가는 불교의 '신중도' 형식을 차용해서 오늘날의 글로벌 브랜드와 상업적 상징들을 신격화된 존재로 재탄생시켰어요. 스타벅스는 초록빛 광배를 두른 신으로, 코카콜라는 붉은 성수를 든 존재로, 현대의 소비 욕망을 담은 신적 상징으로 변했습니다.
작품 아래에 늘어진 색색의 천 조각들과 구성 방식은 전통 괘불이나 제의식에서 볼 수 있는 시각 요소들을 떠올리게 해요. 전시장이 하나의 제단 혹은 제의적 공간처럼 구성되어 있어서, 관객이 이 신전 같은 공간을 걸으며 '소비'라는 현대적 신앙의 풍경을 경험하게 됩니다.
함께 전시된 「문자도」 연작도 흥미로워요. 작가가 새롭게 창조한 문자들이 등장하는데, 이는 브랜드 로고에서 착안해 만든 시각 언어입니다. 한자의 형식을 빌려 상징성과 조형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어요.
지민석은 이들을 일종의 현대 샤머니즘의 정령으로 제시하며, 오늘날 우리가 숭배하고 소비하는 대상들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집니다. 시각적 언어의 힘, 로고와 기호의 신화적 기능에 주목하면서 문자와 이미지, 신화와 자본 사이의 관계를 유희적으로 재구성하는 거죠.
「백팔신중도」는 전체 108점의 시리즈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번 비엔날레에는 그 일부만 선보입니다. 각각의 이미지와 문자는 독립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현대 사회의 신화와 욕망, 그리고 예술의 중재적 역할에 대한 성찰을 유도해요.
지민석의 작업을 보면 일상에서 너무나도 익숙한 것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브랜드들이 어느새 고요한 사찰의 벽화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어요. 작가는 예술가를 단순한 표현자가 아니라 오늘의 신화를 새롭게 빚고 전파하는 중재자이자 주술적 실천자라고 말합니다.
지민석의 작품은 관람객에게 신앙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사물들 속에서 신성과 서사를 발견하도록 유도해요. 익숙한 것들이 낯설어지고, 전통이 지금 이곳의 언어로 다시 태어나는 자리에서 새로운 샤머니즘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미술과 종교, 예술과 자본, 전통과 현대가 복잡하게 얽힌 동시대의 감각을 직관적이고도 유쾌한 방식으로 풀어낸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