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
진양핑 - 해안에서 마주한 고립의 기록
여러분이 보고 계신 이 작품은 중국 작가 진양핑이 2022년부터 2024년까지 팬데믹 시기를 통과하며 제작한 〈Shore〉입니다. 마치 빨랫줄에 걸린 이미지처럼 벽을 따라 100점의 드로잉이 연속적으로 설치되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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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핑은 전통 동아시아 회화의 미학과 현대 서구 시각문화의 언어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회화와 드로잉의 조형 언어를 실험적으로 확장해온 작가입니다. 전통 회화의 물질성과 디지털 이미지의 시각성이 교차하는 접점에서, 수묵의 단색성과 강한 명암 대비, 여백의 구조를 동시대적 조형 언어로 전환하는 작업을 지속해왔어요.
이 작품은 드로잉과 영상, 두 매체를 통해 고립과 불안, 반복되는 일상의 감정을 포착합니다. 작가는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서 포착된 인물들의 정적인 자세들—앉아 있는 사람, 고개를 감싼 손, 멍하니 흘러가는 시선 등을—수십 장의 드로잉으로 기록했어요.
검은 잉크로 격자 무늬 종이에 그려진 이 이미지들을 하나씩 따라가며 보세요. 마치 팬데믹이라는
정지된 시간 속에서 피어난 감정의 잔상처럼 보이지 않나요? 반복되는 인물들의 자세와 시선은 기록이자 잔류이며, 작가는 이를 통해 감정의 지층을 만들어냅니다.
이 작업은 관람객이 걸어가며 하나하나의 이미지를 읽고, 멈추고, 다시 흐름 속으로 들어가게끔 구성되어 있어요. 멀리서 보면 정적인 장면들이 연결되어 하나의 시간 흐름처럼 느껴집니다.
병치된 모니터 영상은 드로잉을 움직임의 차원으로 확장시키며, 서로 다른 매체 간 시각적 리듬을 형성해요. 정지된 드로잉과 움직이는 영상이 교차하며, 관객은 정지와 흐름, 기억과 현재 사이를 오가는 감각적 리듬을 경험하게 됩니다.
작품의 제목인 〈Shore〉, 즉 '해안'은 물리적 공간이자 은유적 경계입니다. 육지와 바다, 개인과 집단, 정지와 움직임 사이에서 작가는 새로운 소통의 감각을 탐색해요.
진양핑의 드로잉은 단순한 재현이 아닙니다. 검은 잉크, 격자무늬 종이, 절제된 명암과 밀도 높은 선의 사용은 동양 회화의 조형성과 현대적 감수성이 만나 탄생한 것이에요. 격리와 통제, 단절의 시간 속에서 작가가 포착한 것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만들어낸 풍경 속 불안과 침묵, 고립의 정서였어요. 이러한 감정들이 화면 위에 축적되면서 거대한 감정 지형을 구축합니다.
작가는 전 지구적으로 경험한 고립과 불안이라는 감정을 바탕으로, 이 작업은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문명 간 감정의 연대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건넵니다. 그의 작업에서 수묵적 사유는 단순한 재료적 전통을 넘어 절제된 감정과 구조적 긴장 사이의 섬세한 균형으로 발현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