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dio guide LIST
Language
나를 기억해
프셰미스와프 야시엘스키 – 기억하는 기계
여러분이 보고 계신 이 작품은 폴란드 출신 작가 프셰미스와프 야시엘스키의 〈remember(me)〉입니다. 길게 이어진 투명한 패널 위에서 검은 액체가 움직이며 마치 살아있는 드로잉처럼 형상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이 작품의 배경은 1978년 폴란드 바르샤바 자동차 공장에서 촬영된 실제 기록영상입니다. 작가는 이 영상에 등장한 노동자들을 바탕으로 '사람-기계 하이브리드'처럼 묘사된 16점의 드로잉을 제작했어요.

작동 방식을 보세요. 투명 플렉시글라스 위에 새겨진 드로잉 위로 유압 장치가 먹빛의 액체를 흘려보냅니다. 그러면 노동자의 형상이 드러났다가 액체가 흘러내리면서 다시 지워져요. 이 과정이 약 10-15분마다 반복됩니다.

야시엘스키는 과학과 예술, 기술과 감정의 경계에서 작업하는 작가입니다. 전자회로, 센서, 신호, 텍스트를 모두 시처럼 다루며 하나의 사유를 시각화해요.

작품 제목 'remember(me)'에서 괄호 속 'me'가 중요합니다. 기억될 주체가 불확실하다는 점을 암시하거든요. 무엇이, 혹은 누가 기억되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집니다. 이 반복되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는 기억과 망각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의 불완전한 기억과 기계적 반복의 완벽성이 동시에 드러나요. 야시엘스키는 이를 통해 디지털 시대에 우리가 역사를 기억하고 저장하는 방식, 그리고 잊혀지는 존재들의 문제를 사유하게 합니다.

기억이란 어쩌면 사라짐을 전제로 합니다. 그 사라짐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연약하고, 또 얼마나 간절한가요. 야시엘스키는 기술을 통해 감정을 말합니다. 차가운 회로 안에 따뜻한 질문을 숨겨놓았어요. "당신은 기억되고 있는가?" "당신은 누군가를 기억하고 있는가?“

흥미롭게도 이 작품은 전통 수묵과 닮은 점이 많습니다. 먹이 번지듯 흐르는 검은 액체, 선 중심의 드로잉, 여백과 형상의 관계는 수묵화의 조형성과 깊이 공명해요. 하지만 수묵화처럼 한 번의 붓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계적 반복을 통해 '지속되는 현재'를 구현합니다. 회화, 조각, 기계, 데이터가 결합되어 새로운 예술 언어가 형성되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어요.

수묵비엔날레라는 전통적 맥락 속에서 그의 작업은 이질적이지만 묘하게 어울립니다. 왜냐하면 수묵 역시 '남기려는 행위'이기 때문이에요. 붓질 하나, 먹의 번짐 하나는 모두 기억의 흔적입니다. 야시엘스키의 작품은 그 수묵의 정신을 전자적 방식으로 이어갑니다. 기억은 형태를 달리할 뿐, 언제나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죠.


「remember(me)」는 조용한 작업입니다. 그러나 그 침묵 안에는 깊은 질문이 있어요. 지금 여러분은 무엇을 기억하고 있나요? 그리고 여러분은 누군가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싶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