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사천왕과 청룡의 해
박지은 – 소녀들이 지키는 새로운 세계
여러분이 보고 계신 이 화려한 병풍은 박지은 작가의 대표작 「소녀사천왕과 청룡의 해」입니다. 한지 위에 그려진 익숙한 듯 낯선 얼굴들이 보이시나요?
박지은은 동양화를 기반으로 활동하면서도 드라마, 뮤직비디오, 캐릭터 디자인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작가입니다. 그녀의 작품은 전통과 대중성, 예술성과 유희성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요. 먼저 화면에서 화려하게 묘사된 청룡의 얼굴을 보세요. 그리고 그 곁에 등장하는 소녀 캐릭터들이 보이시죠? 이들이 바로 '소녀사천왕'입니다. 불교의 수호신인 사천왕에서 모티브를 따온 거예요.
전통적으로 사천왕은 무겁고 위압적인 남성의 모습으로 그려져 왔어요. 하지만 박지은은 이를 완전히 뒤바꿨습니다. 갑옷 대신 리본을 단 소녀들로 재해석한 거죠. 이는 고정된 상징 체계를 유쾌하게 전복하는 시도입니다.
그림을 자세히 보시면 소녀들이 들고 있는 소떡소떡, 탕후루 같은 현대적인 간식들이 눈에 들어올 거예요. 이런 디테일들이 고전적인 병풍 속 캐릭터들을 우리 일상으로 불러오는 장치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외형만 바꾼 게 아니에요. 각 인물은 저마다 표정과 자세, 소품을 통해 고유한 개성과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저 귀엽기만 한 캐릭터가 아니라 각자의 서사가 있는 거죠.
화면을 마치 한 장면의 만화처럼 구성해서 관람자에게 친숙하고 흥미로운 몰입감을 줍니다. 그녀의 소녀사천왕은 강인하면서도 섬세하며,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다양한 면모를 반영해요.
이번 전시는 2024년 용의 해를 기념해 제작된 대형 병풍과 함께, 2025년 뱀의 해를 주제로 한 후속작도 공개됩니다. 새롭게 등장하는 '빌런' 아수라와 소녀사천왕의 대립이 마치 한 편의 서사시처럼 긴장감 있게 전개돼요.
박지은의 시리즈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확장되는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관람객은 단순히 그림을 보는 것을 넘어 이야기를 '따라가게' 됩니다.
전통과 현대, 신화와 현실이 자연스럽게 뒤섞이면서 박지은 특유의 유쾌하고 따뜻한 세계가 펼쳐집니다. 전통 동양화의 문법과 순정만화의 감성을 교차시켜서 과거와 현재, 권위와 일상의 간극을 부드럽게 허물어냈어요. 박지은의 작품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 구조를 이룹니다. 동양화의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지금 이 시대의 시선으로 새롭게 말하는 법을 아는 작가예요.
그녀는 묻습니다. "전통은 단지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일까, 아니면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는 장치일까?" 결국 박지은의 작품은 '동양화'라는 전통적 장르를 빌려오되, 그것을 오늘의 이야기, 오늘의 감성으로 다시 쓰는 시도입니다. 익숙하지만 낯선, 전통적이지만 완전히 새로워진 화면이에요.
지금 이 익숙하고 낯선 소녀들을 통해 여러분은 어떤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