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위에서 나의 왕국을 바라보라
시리아가리 코토부키 만화와 수묵, 경계를 넘는 상상력
여러분이 지금 걷고 있는 이 특별한 공간은 일본 작가 시리아가리 코토부키가 2025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를 위해 새롭게 구상한 설치 작품입니다. 마치 종이로 둘러싸인 동굴 같지 않나요?
시리아가리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1990년대부터 만화와 현대미술의 접점을 탐색해온 독특한 작가입니다. 그는 의도적으로 거칠게 표현하는 '헤타우마' 스타일로 유명해요. 일부러 서툰 듯 그린 그림을 통해 기존의 미적 기준을 해체하고, 날것의 감정과 즉흥성을 강조하는 방식입니다.
이 컨테이너 박스를 거대한 수묵적 상상력의 공간으로 전환한 이 작업은 만화와 수묵, 대중성과 고급 예술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시리아가리 특유의 유쾌하면서도 날카로운 실험입니다.
주변을 둘러보세요. 익살스러운 캐릭터들, 낙서 같은 선들, 알 수 없는 문자들이 흩뿌려져 있죠. 이것은 단순한 만화가 아니라 '감정의 풍경'입니다. 그의 작업은 늘 경계를 넘어요. 만화이지만 만화 이상이고, 유머이지만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이 공간에서는 그림이 벽과 천장을 넘나들고, 종이가 접히고 붙여지며 입체적인 경험을 만듭니다. 드로잉 사이사이에 자석으로 고정된 종이 작품들이 삽입되어 있어서 작업이 계속 움직이고 변화해요. 마치 여러분이 만화 속 등장인물이 된 것처럼, 장면 속을 직접 걸어다니는 느낌을 받으실 겁니다.
이 작품은 그가 오랜 시간 다뤄온 '종이'라는 매체를 입체적 공간으로 확장한 실험입니다. 강한 자석을 통해 벽면에 부착되고, 내부 구조는 자연 환기를 고려해 개조되었으며, LED 조명을 통해 감각적 몰입감을 더합니다.
여기에서 '수묵'은 단지 동양화의 재료가 아니라 감정과 사회를 비추는 언어이자, 공간을 채우는 움직임입니다. 시리아가리는 먹과 붓이 주는 물성과 자유로움을 가장 창조적인 매체로 보고, 이를 통해 만화와 수묵, 고급 예술과 대중문화의 경계를 허물고자 합니다.
시리아가리의 선은 만화의 선이자 수묵의 선입니다. 유쾌한 형식 속에 진지한 질문이 숨겨져 있고, 익숙한 만화적 요소들 뒤로 동아시아 전통 회화의 여백과 감정의 결이 비칩니다.
그의 유머는 단순한 웃음을 넘어서 서로 다른 문명과 감정이 소통할 수 있는 '이웃됨'의 언어이기도 해요. 이번 비엔날레 주제인 '문명의 이웃들'에 누구보다 정확하게 응답하고 있는 거죠.
이 작업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예술은 어디까지가 예술인가? 수묵은 얼마나 변할 수 있는가? 그리고 오늘날 예술은 어떤 방식으로 사람과 세계를 이어줄 수 있는가? 시리아가리 코토부키의 컨테이너 속 세계는 작지만 큽니다. 웃음 속에 사유를 담고, 선 하나로 문명을 건넙니다. 이 공간에서 여러분은 수묵이라는 익숙한 매체가 어떻게 낯설고도 새로운 언어로 다시 태어나는지를 직접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