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파
카키누마 코지 몸으로 쓴 문자, 공간으로 번진 에너지
여러분이 보고 계신 이 가로 10미터에 이르는 압도적인 벽면 작품은 일본 현대서예의 대표 작가, 카키누마 코지의 〈Breaking Through〉입니다. 커다란 먹의 자국과 찢어진 마스킹 테이프가 눈에 들어오시죠?
카키누마 코지는 1970년 일본 도치기현에서 태어나 서예가인 아버지로부터 전통을 익히며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글씨를 단지 쓰는 행위가 아닌 신체와 감정의 표현으로 확장시켰어요. 그에게 서예는 하나의 퍼포먼스이며, 몸으로 그리는 시각 언어입니다.
화면을 자세히 보세요. 왼편에는 커다란 붓의 궤적이, 오른편에는 일본어 문자들이 격렬하게 흩뿌려져 있습니다. 글자들이 반복되면서도 뭉개지고, 때로는 알아볼 수 없는 형태로 해체되어 있어요.
이 작품에서 주목할 점은 마스킹 테이프입니다. 보조 재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문자 구조를 자르고 덮으며 문자의 흐름을 끊는 중요한 역할을 해요. 작가는 이를 '테이프워크' 기법이라고 부릅니다.
종이 위에 마스킹 테이프를 찢어 붙이고, 그 위에 먹을 덧칠해가며 문자와 형상을 구성합니다. 가리고 찢고 덧칠하는 물리적 행위 자체가 조형의 일부가 되는 거죠.
카키누마는 또한 '트랜스워크' 기법을 사용합니다. 작업 중 같은 글자를 수십, 수백 번 써내려가며 몰입과 집중의 상태에 이르는 방법이에요. 문자가 단순히 읽는 대상이 아니라 느끼는 리듬, 보이는 감정이 되는 순간입니다.
그는 대붓이나 천, 혹은 맨손을 사용해 전신의 에너지를 한 획에 실어냅니다. 문자들은 더 이상 기호가 아닌 시간과 감정의 흔적으로 종이 위에 남아요. 먹과 테이프는 물성과 질감에서 서로 다른 속성을 지녀서 전통과 현대, 유기성과 인공성 사이의 긴장을 형성합니다.
글씨를 쓰는 행위를 통해 그는 '지금, 여기' 단 한 번의 순간에 집중합니다. 되돌릴 수 없는 즉흥의 흔적이자 신체와 정신, 감정이 하나로 융합된 흔적이에요. 카키누마는 종종 퍼포먼스로 작업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음악, 소리, 공간과의 협업을 통해 관람자와 실시간으로 그 에너지를 나누는 거죠.
이 작품을 통해 그는 문자 이후의 조형 가능성을 탐색합니다. 서예는 더 이상 종이 위에 고정된 흔적이 아니라 수정과 반복이 가능한 시간의 층위를 가진 공간적 구조로 전환돼요. 작품은 이번 비엔나레와도 깊은 대화를 나눕니다. 표준화된 언어와 형식, 문명적 질서를 넘어서려는 시도죠. 그의 작업은 문자라는 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새롭게 감각하는 방법을 제시해요. 찢어진 테이프, 거칠게 흩뿌려진 먹, 불완전하게 반복되는 글자들은 언어의 의미가 해체되고 감각적 조형으로 전환되는 현장을 만들어냅니다.
이 작품 앞에 서면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깁니다. 문자는 무엇인가? 우리가 읽는 것인가, 아니면 느끼는 것인가? 카키누마는 말없이 답합니다. "글씨는 기호가 아니다. 그것은 몸이고, 공간이며, 시간의 파동이다." 〈Breaking Through〉는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감각을 흔드는 한 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