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란도병풍
석파 이하응 붓 끝에 피어난 난초, 권력 너머의 고독
여러분 앞에 있는 이 우아한 난초 그림들을 그린 사람이 누구인지 아시나요? 바로 흥선대원군 이하응입니다. 19세기 조선을 뒤흔든 강력한 정치가, 바로 그 사람이 조용히 붓을 잡고 꽃을 그렸습니다.
1820년에 태어나 1898년에 세상을 떠난 이하응은 격동의 시대를 살았습니다. 서양 열강이 조선의 문을 두드리고, 안으로는 정치적 갈등이 끊이지 않던 시기. 그 한복판에서 10년간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로 나라를 이끌었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요? 왜 권력의 정점에 있던 사람이 이렇게 소박한 난초를 그렸을까요?
이 병풍 형태의 석란도부터 보겠습니다. 여덟 폭에 걸쳐 난초와 바위가 펼쳐져 있습니다. 각 폭마다 구성이 다르지만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됩니다. 마치 인생의 여러 순간들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난초를 자세히 보세요. 잎은 바람에 휘어지되 꺾이지 않고, 꽃은 작지만 당당합니다. 동양 문인화에서 난초는 '사군자' 중 하나로, 고결한 인품과 변하지 않는 절개를 상징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하응이 자신을 본 모습입니다.
그의 붓질을 주목해보세요. 정치적 연설과는 정반대입니다. 과장이 없고, 소란스럽지 않으며, 담백합니다. 먹의 진하고 옅음만으로 표현했는데도 이렇게 생생한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이것이 바로 수묵화의 힘입니다.
옆의 목란도도 보세요. 화려한 채색 없이도 이렇게 우아한 꽃을 그려낼 수 있습니다. 목련의 부드러운 꽃잎과 가지의 강인함이 대조를 이룹니다. 권력자의 손에서 나온 그림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섬세하고 조용합니다.
그의 서예 작품인 행서 대련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씨가 웅장하면서도 부드럽고, 강하면서도 유연합니다. 획의 굵기 변화와 리듬감이 살아있어, 글자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 됩니다.
이하응에게 그림과 글씨는 권력에서 잠시 벗어나는 유일한 자유의 시간이었을 겁니다. 정치적 계산이나 명분 대신, 자신의 진짜 내면과 마주하는 순간이었죠.
여백도 중요합니다. 동양화에서 비어있는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그 침묵 속에 무한한 상상과 여운이 담겨 있어요. 이하응의 그림 속 여백은 권력자로서는 말할 수 없었던 고독과 성찰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난초의 향기는 멀리까지 퍼져나간다고 합니다. 이하응의 정치적 업적은 여전히 논란이 있지만, 이 그림들은 시대를 넘어 우리에게 조용한 감동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권력은 사라져도 예술은 남는다는 걸, 그가 직접 보여주고 있는 거죠.